“소음 속에서 조용함을 고른 하루의 끝”
“소음 속에서 조용함을 고른 하루의 끝”
Blog Article
AM 08:10 / 회사까지의 거리만큼 복잡해지는 머릿속
하루는 늘 출근버스 안에서 시작된다.
이어폰은 꽂았지만
귀에 닿는 건 소음뿐이다.
시끄러운 대화, 버스 브레이크,
머릿속엔 아직 지우지 못한 메일 제목 몇 개.
그 사이 창밖을 보며,
오늘 하루도 무난히 지나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바람이 현실이 된 적은 거의 없다.
PM 12:40 / 점심시간조차 빠르게 소비되는 공간
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익숙한 루틴처럼 커피를 손에 든다.
잠깐 앉아 있는 이 30분이
오히려 하루 중 가장 짧게 느껴진다.
휴대폰 화면을 몇 번 넘기다가
마음만 더 피곤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점심시간엔 되도록 아무것도 안 보려 한다.
PM 17:50 / 회의 끝,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한 표정들
오후 마지막 일정은 언제나 회의다.
누구도 이기지 못하고,
누구도 만족하지 않은 얼굴로 회의실을 나선다.
보고서를 정리하며,
똑같은 단어를 다시 입력하고 있는 나를 보며
잠깐 멈췄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는 건지
순간적으로 아무 생각이 안 났다.
PM 19:30 / 퇴근은 했지만 집엔 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오늘은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 충분히 말했고
커피숍에서 충분히 앉아 있었으며
길을 걷는 사람들 속에 이미 너무 많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잠깐 혼자 있어보고 싶었다.
말 없이, 누군가 다가오지 않는 공간에서.
PM 20:00 /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익숙한 간판을 찾았다.
조명이 과하지 않았고
입구에서 직원이 반갑게 인사했지만
부담스럽지 않았다.
“초이스 가능하세요.”
조용한 스타일로 부탁했다.
룸으로 들어갔고,
조명은 은은했다.
마이크는 눈에 보였지만
잡지 않았다.
그냥 음악만 틀었다.
PM 21:05 / 누군가와 말을 섞지 않아도 되는 위로
매니저는 말을 걸지 않았다.
필요한 타이밍에만 살짝 시선을 주었고
그 외엔 조용히 공간에 머물렀다.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 방식,
그게 오늘은 무엇보다 필요했다.
아무도 나를 정의하지 않는 곳에서
잠깐 멈추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회복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PM 22:10 / 조금 정돈된 얼굴로 다시 돌아가는 길
정산을 하고,
문을 나섰다.
누구도 인사하지 않았지만
그게 이상하지 않았다.
이 공간은 원래 그런 구조였다.
정리된 공기,
지워지지 않지만 무게는 줄어든 생각들,
그리고 그 안에 잠시 머물렀던 나.
가끔은 이런 밤이,
하루 전체를 살리는지도 모른다.